
🌾 평안도 장국밥 – 맑은 국물의 절제와 생존
1950년대 이후, 평양과 신의주 일대의 시장통에서 서민들이 가장 흔히 찾았던 국밥은 기름진 곰탕도, 진한 돼지국밥도 아니었다. 바로 장국밥이었다.
맑은 간장 국물에 하얀 쌀밥을 말아 파 송송 올린 단출한 한 그릇.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이는 곧 생존의 맛이었다.
1. 국물 – 간장의 맑음
남쪽처럼 뼈를 고아낸 진국 대신, 평안도 사람들은 간장을 풀어 맑게 낸 장국을 즐겼다. 육류가 귀하던 시절, 고기 한 점 대신 국간장 한 숟가락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그 속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은 절약과 절제의 미학이었다.
2. 밥 – 전쟁과 피난의 기억
장국밥에 담긴 밥은 종종 보리·옥수수와 섞인 잡곡밥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귀한 시절, 흰쌀밥이 장국에 잠기면 그릇 속이 잔칫상처럼 환해졌다. 피난민과 농민에게 이는 생명의 끼니였다.
3. 곁들임 – 파와 마늘
푸성귀마저 부족하던 시절, 파 몇 줄기와 마늘 한 쪽은 국밥의 격을 올려주었다. 군데군데 풍기는 향은 북녘의 청빈한 풍토를 담아냈다. 평양 사람들은 여기에 김치 한 쪽을 얹어, 숟가락을 든 채 전쟁의 상흔을 달랬다.
4. 절제의 미학
오늘날 남쪽의 국밥은 ‘진국’과 ‘포만’의 미덕을 강조하지만, 평안도의 장국밥은 정반대였다. 많지 않음이 오히려 충만함이 되는 역설. 그것은 북녘이 견뎌낸 세월의 무게와, 절제 속에서도 잃지 않은 인간의 존엄을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 장국밥은 단순한 국밥이 아니다. 그것은 평안도 사람들의 생존의 역사, 절제 속에서 빛나는 청빈한 미학의 상징이다.